영상 너머
그런 영화
갖가지 반찬을 오밀조밀 잘 차린 밥상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먹기도 전에 설렘이 뱃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어느 나라 어느 동네 사람이든 저마다 그런 기준이 있을 테다. 언제 먹어도 맛있고 언제 봐도 반가운 끼니.
[킹덤 오브 헤븐]은 그런 영화다.
![[킹덤 오브 헤븐] 포스터](https://gvmqyfiaejmjagydlvuv.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article-images/mt2hsdzg-apaiee3624.png)
첫 번째 넘기인 만큼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영화는 영상으로 전하는 이야기의 한 형식이다.
형식이 따로 존재한다면 반드시 그 까닭이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영화를 꾸준히 다룰 테니 끝도 없는 내용을 다 줄줄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만, 왜 그런 영화인지는 짚고 가야겠다.
세 가지 단어가 이 글 전체에 스며 있을 것이다.
시간, 눈, 제한.
연속극은 한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눠서 보여주며, 비디오 게임은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흐름을 조절 할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는 형식이다.
영화는 영상이 시작되고 끝날 때 한 이야기가 끝난다.
감상자는 한 번에 내리 앉아있을 수 있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통은 두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이다. 그 안에 한 이야기가 시작하고 끝나야 한다.
여기서 질문, 속편이 있다면 그 경우는 뭔가? 또, 감상자가 자기 마음대로 끊어서 보면 그만 아닌가?
잠깐 따져보자. 영상 이야기는 눈으로 본다.
곧, 장면이 존재하며 그게 어떤 식으로든 틀 안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감상자는 장면의 모든 것을 볼 수밖에 없다. 무엇을 묘사한 글을 읽을 때처럼 상상할 필요 없이 그저 본다. 봐야만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은 모든 걸 담을 수 없다. 눈이 영화, 연속극, 비디오 게임을 볼 때 기억은 형식마다 다르게 담는다. 흐름에 따라 쌓여가는 정보와 느낌을 주로 담을 수도 있고, 선택과 경험을 담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지금 한꺼번에 자세히 풀어놓긴 어렵다. 여러분도 사람이어서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집중력이 정해져 있을 테니.)
그럼 영화를 볼 때 감상자는 뭘 기억할까?
극장이 단서다. 영화관이 있는 까닭은 분명하다. (영화의 역사도 관련이 있지만 이야기 형식이 우선한다.) 어두운 한 공간, 앉아서 보는 거대한 사각형 장면, 크게 들리고 울리는 다양한 소리들. 이 요소들은 감상자가 영화를 볼 때 기억이 담는 것들을 더욱 크게 돋운다.
시간, 장면이 비추는 구역이(TV화면도 마찬가지) 제한되었을 때 영상 이야기를 기억에 새기는 방법은 한껏 눌러 담기다. 보이는 것들의 구성을 조절하여 잠깐 지나가더라도 인상 깊게, 아무런 말 없이도 그 순간을 곧바로 헤아릴 수 있게, 대사나 문구나 내레이션 같은 말을 넣는다면 그 장면이 더 빛나도록 아주 정교하게.
영화는 장면을 눈으로 보는 찰나의 느낌을 감상자 안에 새긴다.
이것만이 영화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다. 제한된 시간 속, 그 느낌들이 서로 연결되며 끝내 한 이야기에 대한 한 기억으로 남는다. 따라서 감상자가 마음대로 오늘은 몇 분 내일은 몇 분... 끊어서 본다면 어떤 이야기의 조각들을 맛볼 뿐이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한 영상의 시작과 끝 속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요소들이 생태계처럼 치밀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영화라는 방법이 이야기를 전하는 데 계속 쓰이는 까닭은 단순하다. 매력있고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형식이 존재한다 해서 다양성이 없는 건 결코 아니다. 한 이야기 형식에도 무수히 많은 곁가지가 있다. 호불호도 많다.
반찬, 국, 밥을 잘 차린 상은 구성과 형식만으로 한식이 뭔지 설명한다. 반찬이 어떻게 달라지든, 국을 어떻게 끓이든, 밥을 어떻게 짓든, 무수히 많은 곁가지가 있고 호불호도 많지만 한식이라는 게 달라지진 않는다.
[킹덤 오브 헤븐]은 그런 영화다.
자기가 왜 영화인지 스스로 말하는, 어떻게 그 이야기 형식일 수 있는지 스스로 아는 영화.